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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있으라 (2021.08.08. 주일예배 설교. 마태복음 24:32~25:13)

 

마태복음 24

32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33   이와 같이 너희도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앞에 이른 알라

3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일이 일어나리라

35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36   그러나 날과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37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39   홍수가 나서 그들을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40   때에 사람이 밭에 있으매 사람은 데려가고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41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사람은 데려가고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43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44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45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자가 누구냐

46   주인이 때에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4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

48   만일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49   동료들을 때리며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50   생각하지 않은 알지 못하는 시각에 종의 주인이 이르러

51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마태복음 25

1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처녀와 같다 하리니

2   중의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 자라

3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4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5   신랑이 더디 오므로 졸며 잘새

6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7   이에 처녀들이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8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나눠 달라 하거늘

9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와 너희가 쓰기에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것을 사라 하니

10   그들이 사러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11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12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날과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삶을 살다보면, 갑자기 황망하게 가까운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떠나 보낼 때가 있습니다. 어제까지 함께 지냈는데, 오늘 아침에 아무렇지도 않게 인사하고 나왔는데, 그것이 마지막이 때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러한 일을 겪게 되면 크게 두가지 방향으로 인생을 바라보게 된다고 합니다. 첫째는 인생의 허무함을 깊이 느끼게 된다고 합니다. 내가 수고하며 사는 , 내가 애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결국 모든 것이 사라지고 것인데 하는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전도서 1 2~3절의 고백이 이러한 마음을 보여줍니다.

 

2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3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이렇게 인생의 한계를 깨닫고, 허무함을 깊이 깨달으면 깊이 낙심하게 되고,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게 되곤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허무함과 낙심 속에서 우리에게 진실로 의미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게 되고, 지금 순간의 삶이 가장 소중한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전도서 3 12, 13절은 깨달음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12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13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우리의 유한한 , 허망한 속에서 우리가 바라보아야 것은 지금 이순간이다.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삶을 사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다. 먹고 마시고 수고하며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다라고 전도서는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삶이라는 것이, 언제 끝날지 모르니, 지금을 소중히 여기고, 지금 곁에 있는 사람과 함께 사랑하며, 오늘 하루를 행복하게 살자 고백하는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이러한 생각으로 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두번째로 우리가 이러한 삶의 한계를 깊이 겪는 경험을 하게 되면 우리는 한계를 넘어설 초월과 영원을 생각하게 됩니다. 정말 우리의 인생이 이것으로 끝인가, 인생의 의미가 과연 이것뿐인가를 깊이 고민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전에 함께 읽었던 마태복음 19장에 보면 부자 청년이 나옵니다. 그는 가진 것이 많았고, 역시 말씀에 따라 최선을 다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그는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이렇게 질문합니다. 마태복음 19 16 말씀입니다.

 

16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그는 모든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예수님께서 물었습니다. 주님 제가 영생을 얻을 있는 길이 무엇입니까? 절망적인 죽음의 문제를 넘어설 방법이 있습니까? 그것을 저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이처럼, 사람의 삶은 결국 가지의 방향으로 귀결됩니다. 하나는 어떻게 지금 인생을 살것인가, 다른 하나는 존재를 어떻게 남길것인가. 이것이 근본적으로 죽음이라는 운명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숙명인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세상의 끝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사람, 사람의 죽음이 인생의 끝이라면,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이 세상의 끝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말씀은 세상의 끝을 기다리는 삶이 어때야 하는지를 선포하며, 동시에 오늘 사람 사람에게 우리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주님을 기다리는 삶에 대한 말씀이면서도, 동시에 죽음 앞에선 삶에 대한 말씀이기도 것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때 우리는 다시 부활하여 주님을 맞이하게 것임으로, 우리가 죽음 후에 마주칠 현실은 다시오신 예수님을 마주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었던 말씀은 어느때보다 말씀이었습니다. 말씀이 우리에게 선포하는 메시지는 명료하고 분명합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날이 언제인지 없으니 준비하고 깨어있으라. 주님이 오시기 전까지의 개인의 삶에 적용하면 우리가 언제 죽을지 없으니 준비하고 깨어있으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를 누구도 없다고 선포합니다. 천사도 모르고, 심지어 예수님도 모르시고, 오직 하나님만 아신다고 선포합니다. 노아의 홍수가 내렸던 때처럼, 어느날 갑자가 땅에 우리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이라 선포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갑작스러운 일인지 아무도 순간을 알고 준비하지 못할 것이며, 순간 준비된 사람과 준비되지 못한 사람이 엇갈리는 운명을 맞이하게 것이라 선포합니다. 주님을 준비한 사람은 주님을 맞이할 것이요, 주님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은 주님을 맞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42절부터 44절까지 말씀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갖추어야 모습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43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44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주님은 우리에게 선포합니다. 여러분 깨어있으십시오. 내가 여러분에게 언제 다시 돌아갈지 없습니다. 집주인이 도둑이 찾아온다는 것을 알고 깨어있으면 도둑이 들어오지 못하는 것처럼, 여러분도 준비하고 깨어서 내가 것을 준비하십시오. 우리 예수님께서 언제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깨어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분명히 선포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깨어있는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주님은 이어지는 청지기 비유를 통해 깨어있음의 비유를 설명하였습니다. 45절부터 47절까지의 말씀입니다.

 

45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자가 누구냐

46   주인이 때에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4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

 

깨어 있는다는 것은 충성되고 지혜 있는 주인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주인이 잠시 떠나 있는 사이, 주님을 대신하여 주님이 해야 일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인의 사람들에게 때에 양식을 나누어 주고 돌보고 먹이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주인이 다시 때에 충성된 종에게 복을 내리고, 주인의 모든 것을 그에게 맡기게 것이라 선포합니다. 말씀은 예수님께서 떠나시기전, 베드로에게 했던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요한복음 21 15~17 말씀입니다.

 

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사람들보다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6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양을 치라 하시고

17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양을 먹이라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베드로를 만나셔서 이와 같이 물으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리고 베드로에게 부탁하였습니다. 양을 먹이라, 양을 치라.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탁하신 약속은 우리에게 맡겨진 사람들을 돌보고 사랑하고 먹이고, 그들에게 주님의 말씀과 은혜를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것을 알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곁에 있는 사람을 섬기며 살아가는 , 주님을 전하며 살아가는 것이 바로 깨어 있는 것이라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죽음을 바라보는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에서 나누었던 것처럼 죽음 앞에서 우리는 영원을 생각하게 되고, 우리는 지금 순간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 안에서 둘을 하나가 됩니다. 영생을 누리는 것은 오직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 용서 안에서 가능합니다. 그리고 우리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리고 영생을 준비하는 , 영생을 기다리는 삶은 오늘 곁에 있는 이웃과 함께 사랑하고, 섬기고, 먹이고, 돌보는 삶입니다. 이것이 죽음 앞에서 마주하게 우리의 삶의 허무함을 이겨내는 것이요, 오히려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요, 오히려 삶을 가장 사는 길이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악한 종은 주님이 더디 것이라 생각하여 동료들을 때리고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는 일에 힘쓴다고 선포합니다. 또한 미련한 신부들은 신랑이 더디 온다고 생각하여 기름을 준비하지 않아서 신랑을 마지하지 못했다고 선포합니다. 마치 우리 예수님이 오지 않으실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 또는 인생에는 죽음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의 어리석음과 방탕함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그러한 삶의 끝은 주님의 벌이요, 주님의 나라에게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혜로운 종이 되어야 것입니다. 삶의 끝을 아는 사람, 나아가 주님이 다시 것임을 믿고 기다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깨어있는 사람, 준비하는 사람이 되어야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께 충성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충성은 다름아닌, 주님의 말씀대로 이웃을 섬기고 사랑하고 먹이고 돌보는 것입니다. 지금 자리에서 예수님과 더불어 사랑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겐 영원한 생명과 주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부활 이후의 하나님 나라의 삶이 있기 때문입니다. 소망을 기대하며, 오늘 하루도 주님과 더불어 충실히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