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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 (2021.07.11. 주일 예배 설교. 마태복음 23:1~28)

 

마태복음 23

1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3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4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5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6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7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8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형제니라

9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분이시니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

10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분이시니 그리스도시니라

11   너희 중에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13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14   1)(없음)

15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16   있을진저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17   어리석은 맹인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 금이냐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18   너희가 이르되 누구든지 제단으로 맹세하면 아무 없거니와 위에 있는 예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19   맹인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 예물이냐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20   그러므로 제단으로 맹세하는 자는 제단과 위에 있는 모든 것으로 맹세함이요

21   성전으로 맹세하는 자는 성전과 안에 계신 이로 맹세함이요

22   하늘로 맹세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좌와 위에 앉으신 이로 맹세함이니라

23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중한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24   맹인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

25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26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27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28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예수님께서 모든 사역을 마치시고, 제자들과 더불어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습니다. 주님의 모든 사역의 정점이 되는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오르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성전을 정화하시고,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의 죄악을 폭로하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존재에 위협감을 느끼고,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고자 여러질문들을 하였지만, 우리 예수님께서는 지혜로 오히려 가르침을 전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지난 몇주간 나누었던 마태복음 20, 21, 22장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대화를 마치신 후에 매우 강하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비판하시기 시작하였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만 무려 28절이나 되는 말씀인데, 다음주에 나눌 말씀까지 합하면 굉장히 길게 주님께서 이들을 비판하신 것입니다. 내용도 살펴보면 매우 말씀인 것을 있습니다. 당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혹하게 통치했던 로마 제국에게도, 하나님 앞에서 범죄했던 많은 죄인들에게도, 심지어 예수님을 눈앞에서 모욕했던 강도나 예수님을 팔았던 가룟 유다에게도 이와 같이 같이 비판을 하지 않으셨는데, 주님께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이와 같이 강하게 비판을 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이들은 이렇게까지 강하게 비판하셨을까요? 탐욕과 죄악이라면 이들보다 훨씬 심각하게 저지르는 이들이 많았는데, 종교지도자들을 이와 같이 비판하셨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혼을 책임지는 역할을 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절과 2 말씀입니다.

 

1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예수님은 분명히 선포합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아있다.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온전히 이끌고, 이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이들의 영혼을 목양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이들의 모든 삶은 그저 그들 자신만의 삶이 아니라, 모든 이들의 삶과 연결된 삶이었습니다. 이들의 죄악은 단순히 이들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죄악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운명을 가르는 문제였습니다. 그렇기에 이들의 죄악은 훨씬 중대하게 다뤄져야만 했고, 이들이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은 훨씬 책망을 들어야만 했습니다. 그것이 책임을 사람의 숙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이러한 책임을 온전히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이를 보여주는 주님의 무서운 책망이 15 말씀에 나옵니다.

 

15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이들은 말과 행동이 달랐습니다. 이들은 탐욕을 추구했습니다. 이들은 교만했고, 이들은 불의하였습니다. 이들이 가는 곳곳마다 하나님을 알게되는 사람보다, 마음이 낙심해서 하나님을 떠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마리의 양을 나머지 아흔아홉마리의 양과 같은 무게로 사랑하시고,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찾으면 천국에서 잔치를 베푸시며,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위해 자기의 목숨과 같은 독생자를 내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교만과 욕심으로 수많은 이들을 주님께로부터 떨어지게 하는 심각한 문제에 빠진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심각한 도전을 주는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이와 같이 맡겨진 영혼들은 없는 , 삶은 주님의 뜻을 드러내는 삶인가? 나로 인해 주님을 떠나게 되는 사람은 없는가? 우리는 복음을 맡은 자로서, 이와 같은 책임을 감당하고 있는지를 다시 되돌아보아야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깊게 생각해보아야 것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이와 같이 죄악된 , 타락된 길을 가게 되었을까요? 이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걸어가지 못하고,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었을까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율법학자들입니다. 이들은 당대에 누구보다 율법에 깊은 관심이 있었고, 누구보다 율법을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와 같이 율법에 능통하려면 율법을 사랑하고, 율법을 깊이 배우고 연구하고 암송 하여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통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구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러한 이상을 잃어버렸습니다. 이상을 가지고 율법을 공부하고, 이상을 가지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이상을 가지고 권한을 얻게 되었는데,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 이상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율법을 배웠는데, 율법지식과 권력만 남고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상이 고귀하고 아름다울수록 이상이 상실되면, 빠르게 죄악이 자리를 차지해버립니다. 그리고 이상을 추구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도구들은 빠르게 자신의 죄악을 위한 도구들로 교묘하게 사용되어 버립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율법은 이상 하나님을 사랑하는 도구가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는 도구가 되어버렸습니다. 이웃을 섬기는 도구가 아니라 이웃을 지배하는 도구가 되어버렸습니다. 자신을 내어주는 도구 아니라, 자신의 것을 챙기는 도구가 되어버렸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비참한 현실을 하나 하나 지적하여 주신 것입니다.

 

주님은 지적하십니다. 이들은 만하고 행하지는 않는다. 율법은 알고 있고 선포하지만, 그저 율법을 이용하려고만 , 율법의 정신은 따르지 않는다. 이들은 율법과 지위를 이용해 선생님이라 불리며, 사람들을 부려먹고, 좋은 옷을 입고 높은 자리에 앉아서 사람들의 대접을 받는 데에만 익숙하다. 이들은 성전을 관리하면서 성전을 돈을 버는 데에 활용하는 데에 급급하고, 위선을 떨면서도 정의를 추구하지도 않고, 가난한 이들, 애통하는 이들을 긍휼이 여기지도 않으며,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갖지도 않았다. 너희는 겉으로는 그럴듯한 모습이지만 속으로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차 있다. 이들은 남에게 보이는 데에는 탁월했지만 속은 완전히 부패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이 가진 말씀에 관한 지식은 그저 그들을 꾸미는 데에만 사용되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니 이들이 진실로 그들에게 주어진 책임을 감당할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이상을 잃어버렸을까요? 이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잃어버렸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이상을 지켜주는 , 우리의 마음의 중심을 지켜주는 , 그것은 우리 하나님의 목소리입니다. 창세기 1 27~28 말씀입니다.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천지창조 이야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크게 가지를 주신 것을 있습니다. 첫번째는 흙으로 몸을 빚으시고 코로 생기를 넣어 우리의 육체와 생명을 주셨습니다. 두번째는 자연을 창조하여 주시고, 서로에게 서로를 주었습니다. 에덴동산을 주시고, 아담에겐 하와를, 하와에겐 아담을 주셨습니다. 세번째로는 책임을 주셨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직접 말슴하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자연을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게 하는 책임,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에 대한 책임을 주셨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이를 충실히 감당하였습니다. 모든 자연의 이름을 지어주었고, 하와를 보고 중의 뼈요, 중의 살이라 선포하며 자신의 책임을 다하였습니다. 우리는 세가지가 있을 우리는 비로소 온전한 존재로 살아갈 있습니다.

 

그런데, 아담가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을 세가지를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몸과 생명이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고, 영원한 동산 에덴동산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자연과 맞서야 했으며, 그러면서도 동시에 자연을 파괴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서로에 대한 책임감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었을 그들은 뱀에게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였습니다. 이상 책임지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내게 주어진 거룩한 책임을 지는 것을 거부하고, 그저 욕망과 자랑만을 추구하는 삶을 살게 것입니다. 잠시 이상을 추구하다가도 다시 이상을 잃어버리고, 이상을 위한 도구마저 죄악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게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이러한 우리를 회복시키십니다. 요한복음 21 17 말씀입니다.

 

17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양을 먹이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세우시며 품으셨던 그들을 향한 최종적인 목표가 바로 여기에 나와 있습니다. 양을 먹이라. 주님은 주님의 사람을 세우셔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에 계획하셨던 원래의 목표를 이루셨습니다. 다른 이들을 책임지는 책임 갖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목표는 다름아닌 주님의 깊은 사랑으로, 주님의 깊은 부르심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다시 바리새인들에게 돌아가보겠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호된 비판을 받았을까요? 그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영적 책임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러한 영적책임을 다하지 못했을까요? 그들은 그들의 이상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상을 잃어버렸을까요? 주님의 은혜를 바라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우리 예수님의 은혜를 붙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그들을 책망하시며, 그들에게 돌아올 것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우리는 베드로가 주님과 함께 앉아 있던 자리에 앉아야 것입니다. 주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지를 겸손히 바라보고, 주님의 은혜를 구해야 것입니다. 은혜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모든 삶의 자리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책임의 자리라는 것을 깨닫게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책임을 진지하게 받아 들일때, 우리는 진실로 어린아이의 신앙에서 성장한 신앙으로 변하게 것입니다. 성장과 성숙의 결정적인 분기점은 책임을 받아들이느냐에 있습니다. 우리가 기꺼이 주님께서 주신 책임의 자리를 받아들이고, 주님의 은혜를 붙들고, 부르심에 합당하게 달려갈 우리 주님은 우리를 온전케 하실 것이요, 우리의 삶을 통해 충만한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선포하셨습니다.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기꺼이 책임의 길을 걸어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