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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와 생명의 식탁 (2021.09.05. 주일예배 설교. 마태복음 26:14~30)

 

마태복음 26

14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15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삼십을 달아 주거늘

16   그가 때부터 예수를 넘겨 기회를 찾더라

17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유월절 음식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18   이르시되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때가 가까이 왔으니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시니

19   제자들이 예수께서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준비하였더라

20   저물 때에 예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앉으셨더니

21   그들이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22   그들이 몹시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나는 아니지요

23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24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25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이르되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

26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몸이니라 하시고

27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이것을 마시라

28   이것은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언약의 피니라

29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것을 이제부터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30   이에 그들이 찬미하고 감람 산으로 나아가니라

 

오늘 말씀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모두가 기억하고, 기념하는 우리 주님의 마지막 만찬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초대 교회 때부터 마지막 만찬을 매우 특별한 것으로 생각하였고, 모든 예배 때마다 만찬을 재현해 왔습니다. 종교개혁 이후에는 예배의 중심이 설교가 되었지만, 그전까지는 성만찬이 예배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만큼 성만찬을 중요하게 생각해온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코비드 상황이 터지기 전까지는 마지막 주일마다 성찬식을 진행해왔습니다. 우리도 상황이 다시 좋아지면 다시 성찬식을 다시 것입니다. 성찬식은 세례와 더불어 교회의 가장 중요한 성례, 거룩한 예식으로 생각되어 왔습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이와 같이 성찬을 귀하게 여기고, 성찬을 기억하면서, 성찬을 주일마다 재현해왔을까요? 교회는 성찬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성찬을 하며, 의미를 다시 기억하고, 되새기고자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떠한 의미가 있었을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의미를 함께 되새기고자 합니다.

 

첫째로 성찬은 용서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지난 말씀을 통해 제자들의 속마음을 어떠한 마음이었는지를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찾아와 머리에 향유를 부은 마리아에게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네가 무슨 의도로 이러한 일을 하느냐? 값비싼 향유를 허비하느냐? 이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나을 것이다. 이와 같이 비판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 이들을 자신들 스스로가 예수님을 의도를 가지고 만나고 있음을 드러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사랑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자들이라는 것을 드러냈습니다. 이들은 이러한 자신들의 욕심을 감추기 위해 그럴싸한 명분을 이용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드러냈습니다. 이들은 주님을 진실되게 사랑하지 않았고, 오히려 주님을 이용하였습니다.

 

제자들의 배신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오늘 말씀 14절부터 16절까지의 말씀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14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15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삼십을 달아 주거늘

16   그가 때부터 예수를 넘겨 기회를 찾더라

 

때에 제자 사람, 가룟유다가 배신을 것입니다.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자기 선생님이었던 예수님을 넘겨주겠다 약속한 것이었습니다. 대제사장들은 사람들의 눈이 무서워 예수님을 대놓고 체포할 없었습니다. 그런데,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체포할 있도록 적절한 순간을 알리기로 것이었습니다. 가룟 유다가 대제사장에게 받은 돈은 삼십에 불과하였는데, 이는 놀랍게도 출애굽기 21 32절에서 규정한 노예의 목숨 값이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때문에 예수님을 팔았다기 보단, 오히려 예수님이 자신이 원한 메시아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 때문에 예수님을 팔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이용하려는 사람, 예수님의 이용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여 배신한 사람, 그러면서도 자신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예수님께서 느끼셨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그런데 놀랍게도 그러한 순간에 우리 예수님은 이들을 식사의 자리로 초대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식사의 의미는 용서였습니다.

 

주님은 식사의 자리에서 먼저 자신이 모든 상황을 알고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20절부터 25절까지의 말씀입니다.

 

20   저물 때에 예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앉으셨더니

21   그들이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22   그들이 몹시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나는 아니지요

23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24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25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이르되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

 

주님께서 가룟 유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두가지 의미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가룟 유다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는 것이었고, 둘째는 가룟 유다를 용서하시겠다는 마음을 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가룟 유다에게 인자를 파는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지금이라도 회개하고 다시 돌아올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제자들은 모두 주님을 진실로 사랑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특별히 누가 나쁜 사람이라 말하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주님은 회개하면 용서받지 못할 죄가 없음을 아셨기에, 가룟 유다에게도 회개하고 돌아올 것을 담아 마음을 전하신 것입니다. 또한 더불어 주님은 가룟 유다에게 용서의 마음을 전하였습니다. 우리는 원수와 함께 식사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가룟 유다와 함께 마지막 만찬을 나누셨습니다. 그들을 여전히 친구도, 제자로, 사랑하는 동역자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을 사랑하시며, 용서하신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주님의 용서를 기억하며 회개했어야 하였습니다.

 

우리 주님은 이어지는 말씀을 통해 만찬이 용서의 의미를 담고 있음을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28 말씀입니다.

 

28   이것은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언약의 피니라

 

우리 주님은 제자들에게 떡과 포도주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포도주에 관해 말씀하시며 포도주는 너희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해 흘리게 나의 , 약속의 피라 선포하셨습니다. 주님은 이제 십자가의 죽음을 맞이하게 것인데, 십자가의 죽음이 우리 하나님의 용서를 위핸 희생 제물의 죽음이라는 것을 분명히 밝히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용서하시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준 것이었습니다. 마지막 만찬은 주님의 용서를 선포하는 자리였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주님의 용서의 식탁에 부름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제자들과 같은 사람들이요, 가룟 유다와 같은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과 용서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주님을 이용하고, 사람을 이용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배신하고, 주님의 뜻을 되돌아서는 사람들입니다. 그러한 우리를 우리 주님은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다시 용서해주시고, 우리에게 떡과 포도주를 건네십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를 새롭게 하십니다. 놀라운 용서와 사랑의 증거가 바로 십자가요, 그것을 기억하는 시간이 바로 성만찬입니다.

 

나아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이제 우리도 용서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원수를 우리의 식탁으로 초대하는 것입니다. 미워하는 사람, 싫은 사람, 나를 배신한 사람을 우리의 식탁으로 초대하고, 그를 용서하고, 그를 품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꺼이 그에게 떡과 포도주를 건내 주며, 우리 주님처럼 사랑하기로 결단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께 먹고 마시고 잔치하는 자리가 바로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 나라입니다. 우리가 그러한 용서의 식탁을 펼칠 우리 주님은 우리를 통해 주님의 열매를 맺으시고, 나아가 주님의 복을 넘쳐 흐르게 것입니다.

 

둘째로 성찬에는 생명의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먹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출애굽기 말씀에 보면, 우리 하나님께서 노예 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탄식을 들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세워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탈출시켰습니다. 이제 이집트의 노예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새롭게 정착시킬 가나안 땅을 향해 떠났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을 가기 위해 광야를 지나야만 했습니다. 광야에는 당연히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없었습니다. 그때 우리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먹을 것을 내려 주셨습니다. 만나라고 불리는 것으로, 제가 추측컨테 꽈배기, 조청유과 같은 과자의 맛이 나는 음식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먹이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신 사건이었습니다.

 

이와 비슷한 사건이 열왕기상에도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는 당시 우상을 숭배하던 아합왕을 비판하다 그에게 쫓겨 도망쳐야만 했습니다. 그는 그릿이라는 시냇가에 숨어 있었는데, 당연히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때 우리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먹을 것을 보내주시기 위해 놀랍게도 까마귀를 사용하셨습니다. 까마귀가 계속해서 먹을 것을 가져다주어, 엘리야는 무사히 목숨을 부지할 있었습니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당신의 백성을 먹이시는 분이 바로 우리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말씀은 선포합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하나님을 신뢰하며 나아갈 것을 우리에게 이미 선포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 31~34 말씀입니다.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날의 괴로움은 날로 족하니라

 

우리 주님은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먹이시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신뢰하고, 염려하지 말라 선포하였습니다. 우리의 생명의 주관자는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을 온전히 믿고 신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으니, 우리의 모든 생명은 주님의 손에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먹을 것을 쌓아 놓아도 주님께서 우리의 생명을 거두시면 우리의 삶은 거기에서 끝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허락하시면, 주님께서는 생명이 이어질 있도록 우리의 모든 삶을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과 삶이 주님께 있음을 믿고, 신뢰하며 살아가는 ,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요한복음6 35 말씀을 통해 놀라운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떡을 보내주셨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먹으면 결코 주리지 아니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게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새로운 차원의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실뿐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시고, 영생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힘으로 먹고 마시는 것은 우리에게 다시 굶주림을 주고, 목마름을 주지만, 우리 주님을 우리가 먹고 마시면 영원히 주리지 않고, 목마르지 않게 됩니다. 우리가 우리 예수님을 먹고 마시게 , 우리의 삶은 온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선포된 우리 주님의 만찬은 요한복음 6 35절에서 놀라운 주님의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26~28 말씀입니다.

 

26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몸이니라 하시고

27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이것을 마시라

28   이것은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언약의 피니라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자신의 몸을 주시고, 우리에게 주님의 피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그것을 먹고 마시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매번 성찬식을 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성령님의 능력안에서 떡과 포도주에 임하십니다. 실제로 우리는 주님을 먹고 마시는 자리에 참여하게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처럼 우리의 생명의 근원 되시고,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시며, 우리의 생명을 영원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분일 아니라, 자신의 몸과 피를 내어 주셔서 먹고 마시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하여 우리와 연합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을 진실로 깨달은 사람은 두려워하거나 염려하거나 근심하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인생을 챙겨 주시겠지 하는 차원을 넘어섭니다. 우리 주님이 안에 계시고, 우리가 주님 안에게 거하게 , 그리하여 우리 주님과 우리가 같은 운명에 처하게 , 그것이 바로 우리가 주님을 먹고 마시는 것의 의미입니다. 우리 주님은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이 거하게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생명을 위해서만 살아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님이 주신 생명을 나누며 살아갑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자신의 살과 피를 나누며 살아가는 존재가 것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망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어떤 상황과 형편에서든지 주님의 사랑과 생명을 나누는 삶을 사는 ,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선포하셨던 약속, 복이 되는 사람으로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이제 우리 주님은 우리를 주님의 생명을 드러내는 자로 일하시게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를 통해 만나와 메추라기를 가운데 내리실 것입니다. 우리를 까마귀를 삼아 굶주린 자들, 의로운 자들을 먹이실 것입니다. 우리를 통해 오병이어의 기적을 내리실 것입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생명을 드러내고, 우리를 통해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먹이실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으로 살아남는자를 넘어서 주님으로 살리는 자가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주님의 초대, 주님의 성만찬에는 크게 두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용서와 생명입니다. 우리는 주님에게 용서 받은 , 생명을 얻은 입니다. 이것은 우리 주님이 우리를 용서 하는자, 생명을 나눌 자로 부르신 것입니다. 모두의 중심엔 사랑이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용서에 담긴 사랑으로 용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를 식탁에 초대하고, 맛있는 것을 대접하며, 그에게 우리의 살과 피를 선물로 주셔야 합니다. 용서를 통해 우리 주님은 땅에 주님의 나라를 열어가실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주님의 생명을 먹고 마시며, 우리 곁에 있는 자들에게 생명을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에 대한 염려를 멈추고, 우리 하나님의 뜻에 마음을 기울일 , 그리하여 우리 주님처럼 나누고 섬기고 베풀 , 우리 주님은 우리와 더불어 일하시기 시작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를 통해 굶주린 자들을 먹이고, 목마른 자들을 마시게 것입니다. 무엇보다 우리를 통해 당신의 생명을 땅에 드러내실 것입니다. 놀라운 용서와 생명의 역사가 우리 성도님들의 삶에 가득하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