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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담에서 기도로 (2021.09.12. 주일 예배 설교. 마태복음 26:31~46)

 

마태복음 26

31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32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33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울기 전에 네가 나를 부인하리라

35   베드로가 이르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

36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7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40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42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43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피곤함일러라

44   또 그들을 두시고 나아가 세 번째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45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46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벌써 날씨가 쌀쌀해지고, 계절이 바뀌는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길가의 나무들도 아름다운 색들로 물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느 해보다 뜨겁고 건조했던 밴쿠버의 여름이 서서히 지나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렇게 하루 하루 바쁘게 살때에는 느끼는 , 문득문득 이렇게 계절이 바뀌는 것을 느끼게 되면, 시간이 정말 훌쩍 지나감을 느끼게 되는 같습니다.

 

이렇게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것을 느낄 때마다, 우리는 지금 내가 잘살고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을 되돌아보게 되곤 합니다. 어떤 때는 확실한 답이 나오기도 하지만, 어떤 때엔 확실하게 대답하기 어려운 순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때 우리가 붙들어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우리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실수하고, 실패할 있지만, 우리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 우리의 모든 , 심지어 우리의 연약함, 우리의 부족함, 우리의 실수 마저도 사용하셔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계절이 바뀌는 시기, 우리 하나님 다시한번 붙들고 나아가는 우리 성도님들 되시길 축복합니다.

 

우리가 함께 나누고 있는 마태복음 말씀도 어느덧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지지난주, 지난주, 그리고 오늘 말씀은 모두 예수님께서 처형되기 전날에 있었던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죽기 전날에 함께 했던 사람들은 다름 아닌 예수님의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간동안 예수님의 제자들이 보여주었던 모습은 참으로 연약하고 부족한 모습들뿐이었습니다. 그들은 3년이나 예수님과 함께 했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알지도 못했고, 참으로 사랑하지도 못했습니다. 제자들의 모습은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요, 부족한 존재인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거울입니다.

(복음서는 이들의 신앙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충격적인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31절과 32 말씀입니다.

 

31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32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우리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마친뒤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밤에 너희가 나를 버리리라. 예수님께서는 스가랴 13 7 말씀을 인용하여, 이스라엘의 목자를 칼로 쳤을 , 모든 양들이 흩어지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 모든 제자들이 자신을 버리고 도망치게 것임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께서 부활하신 이후에 먼저 갈릴리에 가서 다시 제자들을 모으실 것이라 선포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보다 우리를 아시는 분이십니다. 사람의 연약함과 죄성을 누구보다 아시는 분이십니다. 제자들은 3년이나 예수님과 함께 했지만, 진실로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이들이 특별히 악한 사람, 부족한 사람이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누군가를 완전하게 진실로 믿고 사랑하지 못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제자들도 우리처럼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사람들이었고, 한계가 있는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었고, 두려움과 불안을 이겨내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주님은 당신이 고난의 길로 걸어가게 때에 모든 제자들이 자신을 버리실 것이라 선포하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이러한 우리의 한계를 너무나도 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와 같이 선포하시자 발끈하는 사람이 나왔습니다. 바로 베드로였습니다. 만일 누군가가 당신은 온전한 사랑을 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당신의 충성과 신의는 한계가 있습니다. 당신의 믿음은 절대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아닙니다. 당신도 그저 연약한 사람, 죄인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이야기한다면 어떠한 마음이 솟아오르시나요? 특별히 자기 스스로 나는 이부분에 있어서만큼은 훌륭한 부분, 자신 있는 부분이라 생각했는데, 우리 주님께서 아니 그렇지 않아 라는 말을 하신다면 어떠한 마음이 솟아오르시나요? 베드로는 누구보다 자기가 예수님을 사랑하고, 누구보다 자기가 의리가 있고, 진실된 마음으로 충성한다고 믿었는데, 주님이 부분을 건드리자 발끈하며 반응하게 것입니다.  33 말씀입니다.

 

33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베드로는 강하게 대답하였습니다. 모두 주를 버린다 할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이는 장담의 말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항변의 말이기도 하였습니다. 주님이 지금 마음을 모르셔서 하는 말입니다. 주님을 향한 저의 믿음과 충성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지금 저를 어떻게 보시고 그런 말을 하시는 것입니까? 아이고, 주님 주님은 지금 사람을 잘못보셨습니다. 저는 주님을 배신하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울컥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강하게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놀라운 예언을 하십니다. 34 말씀입니다.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울기 전에 네가 나를 부인하리라

 

베드로야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오늘밤이 가기전에, 닭이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할 것이다. 베드로의 장담이 평생은 커녕, 1년도 아니고, 1달도 아니고, 그날 밤이 가기전에 무너질 것이라는 것을 주님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스스로 생각하는 결단과 다짐이 얼마나 무력한 것인가, 자기 자신을 향한 확신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주님은 그대로 보여주셨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사람은 결코 자신을 장담해서는 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야기를 듣고, 오히려 크게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35   베드로가 이르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

 

베드로는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장담하였습니다. 모든 제자들도 그와 똑같이 장담하여 자신의 의지와 결단을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이들의 이러한 장담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러한 제자들을 데리고 주님께서 함께 가신 곳이 있었습니다.  바로 겟세마네입니다. 36 말씀입니다.

 

36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예수님께서 장담하던 제자들을 겟세마네라는 곳으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기도할 것을 말씀하시며, 제자들에게도 여기 앉아 기도하라 명령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장담하던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필요한 것은 장담이 아니라 기도라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장담에서 기도로의 전환,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할 일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장담합니다. 그러나 겸손한 사람은 기도합니다. 장담은 나를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는 우리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고작 몇시간 뒤에 일도 알지 못하면서 장담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누구보다 아십니다. 그렇기에 주님은 당신께서 걸어가야 길을 하나님께 맡기며 기도하였습니다. 주님을 버리지 않는 길은 장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데에서 비롯됨을 우리 주님은 분명히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기도에서 더욱 분명히 드러납니다.

 

37   베드로와 세베대의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38   이에 말씀하시되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만하시거든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주님은 제자들 중에서 특별히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기도의 자리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근심과 괴로움에 싸여 제자들에게 특별히 부탁하였습니다. 내가 지금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 너희는 여기에 머물며 나와 함께 깨어서 기도해다오. 그리고 주님은 조금 앞으로 나아가서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아버지여 만일 하시거든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

 

주님은 자신의 마음을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걸어가야 길은 단순한 육체적 고통의 , 그저 죽음의 길이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 걸어가실 길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끊어진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우리 예수님에게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지는 형벌을 대신 주시기로 결정하신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고통을 무엇보다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렇기에 이처럼 근심하고 괴로워하며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기도를 통해서도 결국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였습니다.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 기도는 자신을 내려놓고 주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일임을 분명히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주님의 모습을 본받아야 합니다. 주님은 기도를 통해 우리가 믿는 것이 우리 자신을 향한 믿음이 아니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라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자기 원하는 확신을 갖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온전한 그리스도인은 그렇기에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뜻에 온전히 순종합니다. 제자들은 장담하며 자신의 믿음을 선포했지만, 우리 주님은 제자들에게 기도로서 믿음의 길이 어떠한 것인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주님은 고난의 순간 속에서도 이것을 제자들에게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장담했던 제자들의 모습은 참담했습니다. 40~46 말씀입니다.

 

40   제자들에게 오사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없더냐

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42   다시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잔이 내게서 지나갈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43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피곤함일러라

44   그들을 두시고 나아가 번째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신

45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46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예수님께서 기도할 때에 제자들은 자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장담했던 제자들이 정작 기도의 자리에서는 잠을 자고 있었던 것입니다. 베드로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와 함께 시간도 깨어 있을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은 원하고 있어도 육신이 약하도다.

 

순간은 그들의 장담이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들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이 죽음을 앞두고 기도하는 , 깨어서 한시간도 깨어서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죽어 있었습니다. 주님은 이러한 현실을 안타까워하면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진실로 나를 따르고자 하느냐? 깨어서 기도해야 한다. 마음이 원한다고 해서, 너희가 장담한다고 해서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주님을 따르는 길은 기도하는 자리, 자신을 정직하게 바라보게 되는 겸손한 자리에서, 그리고 주님을 따르는 순종의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두번째 기도할 때에도, 그리고 세번째 기도할 때에도 모두 잠들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매우 피곤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제 아무런 준비도 없이 주님의 고난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주님의 고난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우리의 모습이 얼마나 연약한 모습인지를 정직하게 보여줍니다. 우리의 믿음은 미약합니다. 우리의 사랑 또한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주님 앞에서 어느 하나 장담할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가장 믿고 있는 그것이 우리의 가장 걸림돌이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은 그의 가장 자랑이었던 아름다운 머리카락 때문에 나무에 걸려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장담이 아닌 기도의 길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장담은 나에게 대한 믿음이라면, 기도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우리는 장담으로 믿음을 자랑하지 말고, 오히려 기도로 믿음을 고백해야 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로 주님 앞에서 우리의 진실된 모습을 정직하게 고백하고, 주님의 뜻에 뜻을 내려놓으며, 주님의 뜻을 순종하겠다고 고백하는 , 주님은 그것을 진실된 믿음으로 받아 주시며, 그것을 통해 놀랍게 일하십니다.

 

그리고 우리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의 길을 열어주시기 위해, 먼저 십자가의 , 부활의 길로 걸어가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게 장담했던 제자들은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자 모두 주님을 부인하고 두려워하며 뿔뿔이 흩어져 도망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다시 부활하셔서 제자들을 다시 불러 모으시고, 이들에게 다시 용서와 사랑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이후, 장담하는 삶이 아니라 기도하는 삶으로 온전히 변화되었으며, 자신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모든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놀라운 사도의 역할을 감당하였습니다. 주님은 자신의 믿음을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의 용서와 사랑 앞에서 자신의 믿음 없음을 고백하고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을 통해 놀랍게 주님의 일을 이루셨습니다.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모두 이와 같은 주님의 사람으로 날마다 세워지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