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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배워주기 (2016.05.15. 대학부 집회 설교)


베드로후서 1장

5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우리나라 말 중에 참 좋은 말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배워주기’라는 말입니다. 사실 배워주다라는 말은 표준어가 아닙니다. 어법에 맞는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린시절 어른들에게 저는 ‘배워준다.’라는 말씀을 많이 들어서 그 어감이 잘 느껴집니다. 여러분 배워준다라는 말의 뜻을 알고 있나요?


배워준다라는 말은 가르쳐준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가르치는 것이 곧 배움을 준다, 함께 배운다의 의미가 있어서 아마도 이렇게 표현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겸손함과 사랑 가운데에서 서로 서로 가르치면서 함께 배워가는 것, 그것이 참된 공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배워준다는 표현은 교회 공동체에 참 적합한 표현이라 생각됩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는 서로가 서로를 가르치며, 배우는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잘 보면 우리는 함께 모여서 늘 배웁니다. 예배의 말씀, 소그룹 교육, 집회 교육, 성장반 교육, 두나미스, 언더우드, 동계 수련회, 하계선교 모두 배움의 시간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통해서 우리는 믿음이 무엇인가, 사랑이 무엇인가, 예수님 닮아가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관계는 어떻게 맺어야 하는 가, 진리는 무엇인가 끊임없이 배우게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 속에서 말씀을 배우는 것 뿐 아니라 가르치는 것도 사실은 배우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오히려 배울 때에보다 가르칠 때에 우리의 부족함과 연약함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게 됩니다. 가르쳐주기 위해서 배우고, 배운 것을 가르치면서 배우는 공동체가 바로 우리 공동체 인 것입니다.


제가 새문안 교회에 와서 한가지 참 좋았던 부분은, 이 배움의 전통이 오랜 시간 깊게 내려져 왔다는 것입니다. 새문안에는 특별히 배움을 위한 모임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 성경공부 모임과 학술강좌, 심포지엄, 아카데미 와 같은 교육 모임이 많이 있습니다. 그 어느 교회 보다도 교육이 특화되어 있는 교회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유형의 자산보다 너 놀라운 것은 딱 눈에 띄지 않지만 우리 내면에 도도하게 흐르고 있는 자산이 있다는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배워주고 배우는 문화가 깊이 뿌리내려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비록 교역자지만 이곳에 믿음의 선배들이신 어른들과 뵐 때마다 늘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신앙의 햇수가 신앙의 깊이를 확보해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신앙의 햇수만큼 깊은 성찰과 배움이 있었다면, 그것은 그만큼의 시간이 지나지 않고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놀라운 지혜가 담겨져 있습니다. 제가 새문안에서 느낀 것은 이러한 깊이가 곳곳에 배어져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더불어 이것이 아랫세대로 도도하게 흐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비단 어른들 뿐 아니라 대학부 여러분들에게도 느껴지는 것이었습니다. 새내기들로 들어와서 성장해 나갈때까지 여러분들이 서로를 가르치고, 서로에게 배워가며 성장해가는 모습을 느끼며 참 놀라운 공동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들러올때는 병아리였어도, 나갈때는 장닭이 되며, 어른이 되어서는 봉황이 되는 공동체가 아닌가 합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쓴 유홍준씨는 ‘인생도처유상수’라고 했습니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곳곳에 고수들이 존재하는 것이지요. 새문안교회는 곳곳에 신앙의 고수들이 계시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분들과 함께하며 겸손해지는 것을 배우는 것, 더 성장하는 것이 새문안의 힘입니다. 오늘 우리와 함께하신 멘토분들, 부감님들, 그리고 부장님까지 모두 배워주기를 위한 어른들이십니다. 우리 대학부원들이 어른들과 함께 더욱 성장해 가길 소망합니다.


오늘 우리는 말씀을 통해 우리들이 서로에게 배워줘야 하는 것, 배워야 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살펴보려고합니다. 다같이 오늘 본문을 봉독하겠습니다. 


5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베드로 사도는 오늘 우리가 서로가 서로를 통해 배워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나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들은 우리가 성장해 가는 일련의 깊이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 전 4절에서는 이것이 신성한 성품, 곧 예수님을 닮아가는 길이라 말씀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처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맞습니다.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내가 구원받았다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내 삶의 주인이 이제 내가 아니요, 예수님이라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모든 삶 가운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나를 인도하신다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내가 그분의 사랑에 매여 있다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우리 신앙여정에 첫 걸음입니다. 우리는 이 믿음을 처음으로 배우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덕입니다. 덕이란 무엇일까요? 아레테라는 헬라어인데, 이것은 덕스러운 행동을 의미합니다. 믿음은 자연스럽게 실천적인 모습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어느곳에 있던지 덕이 되는 사람,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야고보서에서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라고 고백합니다. 믿음에는 반드시 행함이 따라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 행함에 있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지식입니다. 지식은 덕의 방향을 정해줍니다. 날카로운 앎은 우리를 반성하게 하는 좋은 거울이 됩니다. 행함의 열정이 배의 돛이라면 지식의 깊이는 배의 키가 됩니다. 세상에는 네가지 타입의 사람이 있습니다. 똑부, 똑게, 멍부, 멍게, 이 중에서 조직에 가장 방해가 되는 사람은 멍부입니다. 멍청한데 부지런하면 큰 악을 만듭니다. 


그러나 지식에는 반드시 절제가 필요합니다. 지식이 칼이라면, 절제는 칼집이라 할 수 있습니다. 헛똑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는 것은 많으나 그 지식을 절제할 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아는 것 때문데 관계가 모두 깨지고, 아는 것 때문에 사람을 해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맹사성 이야기>


절제를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결국 사람은 자신을 드러내는 데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작은 것 하나를 절제하려고 해도 얼마나 큰 인내가 필요한지 알고 있습니다. 인내는 시간과 싸우는 것이요, 욕망과 싸우는 것이요, 결국은 자신과 싸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내는 그 자체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배우는 놀라운 시간입니다. 


이러한 인내가 쌓이면 우리는 비로소 경건한 삶을 사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경건하다는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하나님 안에 사는 삶, 하나님적인 삶을 의미합니다. 일상에서 하나님과 늘 함께하는 삶, 하나님을 의식하는 삶, 하나님 닮아가는 삶이 되는 것이지요. 우리의 신앙은 어느날 거하게 한상차려 먹는 외식과 같은 것, 스테이크와 같은 것이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신앙은 매일 마시는 물처럼, 매일 차려먹는 집밥처럼, 매일 숨쉬는 호흡처럼 일상적이지만 우리를 살게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한 일상의 경지로 나아가는 것이 경건입니다. 파도가 아니라 조류가 되는 것입니다. 


경건은 다시 형제 우애로 나아가야 합니다. 여기에 형제 우애의 뜻은 같이 믿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앙을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로만 여기는 믿음은 잘못된 믿음입니다. 모든 믿음은 필연적으로 곁에 있는 형제 자매들에게 향해야 합니다. 경건이 깊어질수록 우리는 곁에 있는 형제 자매들과 사랑을 나누게 됩니다. 경건은 하나님 앞에서의 온전한 겸손이요, 하나님 닮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처럼 자신을 비우고, 곁에 있는 이에게 환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형제우애는 최종적으로 사랑으로 나아갑니다. 이 사랑은 아가페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온전한 사랑에 거하게 되는 것, 믿는 자 믿지 않는자를 가리지 않고 온전히 섬기는 사랑으로 사는 것, 그 사랑을 완성하는 것이 바로 신앙의 완성입니다. 말씀은 8절에서 이것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요, 열매를 맺는 것이라 가르칩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숙이 없는 자는 근시안이거나 맹인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주시고 택하셨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닫고 흔들리지 말 것을 권고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여정에 함께 들어선 사람입니다. 우리 대학부원들, 그리고 우리 교역자들, 우리 믿음의 선배이신 부장부감멘토님들 모두 그 길에 함께 들어선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도움울 주고 받는 자들이 되었음 좋겠습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배우고 배워주는 자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날이갈수록 예수님 닮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