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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아 주 찬양하라 (2016.07.17. 한기림 찬양대 설교)


시편 103편

1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2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3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4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5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소요리 문답의 1항에 보면 이렇게 고백합니다. ‘인간의 최고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우리가 창조된 최고의 목적은 바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영원히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라 선언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최고의 목적에 얼마나 합당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우리는 찬양대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 목적을 위한 직분에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놀라운 부르심에 감격하고, 늘 진정으로 찬양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 때 진정으로 찬양하는 자들이 될 수 있을까요? 진정으로 찬양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찬양은 반응이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아무런 생각없이 찬양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찬양은 그 목적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놓치게 합니다. 찬양의 음악에 빠져서 찬양을 하고, 찬양하는 분위기에 빠져서 찬양을 하고, 심지어 찬양의 가사에 자아도취 되어 찬양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찬양을 통해 스스로 신나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찬양은 늘 그 찬양의 대상인 하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께서 오늘 나에게 하신 놀라운 일을 기억해야 합니다. 공중에 뜬 하나님이 아니라 오늘 나와 관계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설명해보겠습니다. 우리가 짝사랑을 할 때 늘 실패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는 짝사랑 감정 자체에 빠지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이 매번 바뀝니다. 좋아하는 대상이 생기면 뇌에 도파민과 옥시토신이 마구 분비되는데 이 호르몬이 주는 쾌감을 즐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에겐 사실 그 대상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감정이 중요합니다. 이 감정을 즐기고, 감정 자체를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찬양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찬양을 할 때 느껴지는 감동과 감격을 즐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사실 하나님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흔히 우리가 은혜라고 바꾸어 말하는 자기 감격과 자기 감동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사람은 자기 마음을 우상숭배하는 것이지요.


두 번째로 짝사랑할 때 실패하는 이유는 실제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상상하는 그런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일종의 투사지요. 이러한 사람은 사실 그 대상과 관계 맺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사람이라고 믿고 싶은 사람과 만나는 것입니다. 특별히 관계를 맺지 않고 멀리서 오랫동안 지켜볼 때 이러한 착각에 쉽게 빠집니다. 그녀는 완벽한 사람이야, 그는 최고의 성품을 지녔어, 그녀는 아마도 나한테 관심이 있는 것 같아 이렇게 자신이 만들어낸 모습을 형상화하는 것이지요. 실제 그 사람을 만나면 환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으로 쉽게 관계가 깨지는 것을 알 수 있씁니다. 찬양을 할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만들어 놓은 하나님을 찬양하시는 것이지요. 저는 이를 호들갑 신앙, 환상 신앙이라고 이름짓고 싶습니다. 내가 원하는 일이 잘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고, 내가 성공하고 돈을 벌 때 하나님을 기쁘게 찬양하고, 조금만 안좋은 일이 생기면 절망하는 모습이 바로 이러한 모습입니다. 열광과 실망사이를 오고가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일까요? 바로 직접 만나는 것입니다. 사랑은 나의 감정을 상대방의 감정과 맞추어가는 것입니다. 사랑은 내가 생각하는 상대방과 진짜 상대방을 맞추어가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날때는 총 여섯명이 만난다고 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나, 그가 생각하는 나, 그가 생각하는 나에 대한 나의 생각, 그가 생각하는 그, 내가 생각하는 그, 내가 생각하는 그에 대한 그의 생각. 이렇게 여섯명이죠. 이러한 다름을 맞추어가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찬양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뜬구름 잡는 찬양, 내가 원하는 모습에 대한 찬양, 감정만을 즐기는 찬양이 아니라, 나에게 오늘 다가오셔서 나에게 일하신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 바로 진정한 찬양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일을 하시나요? 오늘 말씀은 그 일들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심각한 영혼의 병, 육체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죽게 되었는데 이를 영원한 생명으로 옮기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를 깊이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좋은 것, 곧 하나님을 우리에게 알게하시고 우리 청춘을 독수리처럼 새롭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이 놀라운 일은 고백하는 것, 그것이 바로 찬양입니다.


우리는 이 고백을 더욱 깊이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알고 그 은혜에 반응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다시 십자가를 바라보고, 놀라운 구속의 은혜를 누려야 합니다.